서문_나의 상처를 바로 볼 때 변화가 시작된다
1부 착한 사람
착한 사람이 왜 행복하지 못할까?
내 안에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산다
평범한 일상의 또 다른 얼굴, 권태
10년 동안 스스로를 집에 가둔 남자
나는 내 삶의 주인인가?
누구나 가슴에 아픔을 간직하고 산다
나는 죽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이제 그만 생각을 멈추세요"
2부 상처받은 가족
빚보다 무서운 불행의 대물림
가족에 불행을 불러오는 3종 세트
아버지도 가끔은 울어야 한다
가족의 문제를 떠안고 있는 아이
얼굴만 보면 싸우는 부부, 성격 차이 때문일까?
가족을 지키려 했지만 가족 밖으로 쫓겨난 남자
자상한 아빠? 알고 보면 불안감이 높은 아빠
"독립해라. 하지만 내 품을 떠나진 마라!"
3부 가족의 발견
가족이 가족에게 그림자를 투사하다
아들이 아버지를, 딸이 어머니를 모방하다
아빠의 한숨 소리에 다 같이 우울해지는 이유
가족은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가족 안에서 분명한 내 자리 찾기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가족의 운명
가족의 불행을 내 속에 품다
4부 나와 가족을 보듬다
혼자가 아닌 함께여서 더 외로운 남과 여
공감의 부재가 가져온 가족의 불행
가족에게 공감하기, 그리고 변화하기
아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되는 이유
나와 가족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다
갈등의 악순환에서 행복의 선순환으로
그럼에도 가족은 우리의 마지막 피난처다
후기_인생의 고단함과 고통을 아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세한도>
관계의 문제'는 상대방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자기가 주도권을
쥐고 있고 자기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해결의 열쇠'를 상대방이 쥐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답답함과 조급함, 때로는 절망마저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열쇠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부담감이 훨씬 덜해진다. 우리 인간은 삶 속에서 겪는 문제와 갈등 그
자체보다는 해결을 위한 주도권이 자신에게 없다는 사실에 더 큰 무기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부부의 이혼의 사유는 대부분 성격 차이라고 한다. 성격 차이로 헤어졌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었겠네.'라면서 위로하고 이해해 준다. 그런데 두 사람이 갈라선 것이
정말 성격 차이 때문일까? 서로 성격이 달라서 갈등이 생긴다고 말하는 부부를 깊이 살펴보면,
성격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은
다르지만 속에 감추어진 부분은 놀랍게도 같을 수 있다.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라. 미래를 열심히 준비해서 너의 인생을 개척하고 결혼해서 독립해라.
하지만 나는 네가 독립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내 품을 떠나지 말고 여전히 정서적으로
의존하고 있어야 한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의 성공을 원한다. 멋지게 독립해서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 자녀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부모는 없다. 그러나 자녀의 정서적 독립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자녀가 유년기 때처럼 자신에게 밀착해 있기를 또 의존하기를 바란다. 자녀는 독립하라는 언어적
메시지를 선택해야 할지, 떠나지 말라는 비언어적 메시지를 선택해야 할지 갈등에 빠지게 된다.
나에게 상담을 받았던 한 여성이 '왜 나만 참고, 용서해야 하나요?'라고 반문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당신에게 문제가 더 많아서가 아닙니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갈등의 플로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먼저 빠져나와야 한다.
이것은 마치 과거 시골에 있던 펌프와 같다. 펌프 아래에는 시원한 지하수가 가득하지만 물을
마시려면 한 바가지의 물, 즉 마중물이 필요하다. 물을 펌프 속으로 흘려보내고 펌프질을 하면
시원한 물을 마음껏 끌어올릴 수 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여가 시간에는 즐거운 활동을 해야 하고 그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득이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충분히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삶의
채널을 돌려 내면에 쌓인 그림자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우리는 힘든 일을 많이 겪을 수 있다. 마음이 다치고 상하는 일도 많다. 때론 그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한다. 트라우마는 그것을 겪은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보게 만든다. 불신에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으
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왜곡된관점을 더욱 견고하게 구축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은 점점
고립되고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격리되어 혼자가 된다.
심리학이 여기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고통의 기억을 없애 주거나 부정적인 감정들을 해소해
주는 것이 아니다. 심리학은 트라우마를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켜 준다. 회피하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해 준다. 사고의 틀을 바꾸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트라우마는 회복될 수있다. 그리고 이때 가족과의 따뜻한 소통과 공감은 큰 힘이 된다.
가족은 때로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마지막 안식처이자 피난처인것이다.
이처럼 아이의 자기중심적 시각은 자존감에 더 큰 상처를 입게 만든다. 자기심리학의 선구자인
코헛은 ˝오늘날 상담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느라 자존감에
상처를입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상대에게 ˝예.˝라고 말하고는 스스로 지치고 ˝아니오.˝
라고 말하고는 스스로 죄책감에 빠진다. 매일매 순간 주는 것과 받는 것‘ 사이에서 갈등한다.
자신보다 타인을우선시하는 것‘이나 타인보다 자신을 우선시하는 것‘ 역시 갈등을일으킨다.
공감 능력이 없는 어른
정신분석가 스캇 펙(Scott Peck)은 ˝어린 시절의 상처는 자기 자신을 늘못살게 괴롭히는 신경증
환자가 되게 하거나 자기 이외의 사람들을못살게 괴롭히는 성격장애자가 되게 만든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러한 성격장애자들이 제일 못살게 구는 대상은 바로 그들의 아이들˝이라고 하였다.
고대 철학자들은 생각의 실타래가 풀리지 않아 고통스러울 때 ˝새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라˝
고 권한다. 자유롭게 창공을 나는 새의 기적은 대개 위에서 아래를 향한다. 이러한 새의 시각으로
보면 현재의모든 근심과 복잡한 생각들을 넓게 멀리 볼 수 있다. 또 그동안 너무 근거리에 있어서
한 귀퉁이 밖에 보지 못했던 두려움과 근심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다.
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는 《명상록》에서 ˝새의 시각으로 보면 그대를
괴롭히던 많은 쓸데없는 것들이 지워진다.˝고 말했다. 고뇌와 근심이 뒤엉키고 과거와 미래가 얽히고
설킨 순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전체를 조망하면 복잡한 생각들이 단순해지고 생각의 혼란이
수그러든다는 말이다.
새의 시각을, 심리학 영역에서는 ‘객관적 관찰‘로 치환할 수 있다.심리 상담은 내담자로 하여금
자기 문제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도록 돕는다. 자기 문제를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바라보면 그동안
보지못했던 부분이 보이고 여기서 새로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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