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초점을 맞추면 독설은 들리지 않는다
나는 상보성의 원리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이런 말을 해준 적 있다.
"한밤중에 옆집 개가 요란하게 짖어 대 잠을 설친 적 있죠?
아니면 도서관에서 누가 눈치 없이 계속 떠들어대 몹시 짜증 났던 일?"
모두들 "네" 하고 대답했다.
"그건 우리가 습관적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여서
그래요. 개 짖는 소리나 떠드는 소리 배후에 깔려 있는 침묵의 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여보세요.개 짖는 소리나 떠드는 소리는 저절로 들리지 않게 됩니다."
남이 내게 독설을 쏟아 부을 때도 마찬가지다. 독설에만 귀를 기울이면 도저히
견디기 힘들고 나도 모르게 흥분해 같이 진흙탕에 뛰어들게 된다.
하지만 독설 대신 숨겨진 진실을 캐내겠다고 마음먹으면 독설은 시냇물처럼
그냥 흘러가 버려 들리지 않게 된다.
그말을 유난히 주의 깊게 들었던 한 남학생이 몇 주 후 자진해서 입을 열었다.
시골출신으로 평소 말수가 적고 발표하라면 뒤로 빼곤 하던 학생이었다.
그가 주말에 고향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이었다.
중간에 가다 보니 바로 앞선 차가 어쩐 일인지 삐뚤빼뚤 차선을 넘나들고 있었다.
그러자 옆 차선에서 달리던 차가 갑자기 그 차 앞에 홱 끼어들더니 차를 멈춰 섰다.
"끼익---!"
그도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세운 차에서 20대 초반
쯤의 운전자가 뛰어내렸다. 그러더니 삐뚤거렸던 그의 앞차로 다가가 삿대질을
하는 것 아닌가?
"야 이XX 야! 차선 똑바로 지켜!"
앞차에는 중년의 신사가 타고 있었다. 졸음이 쏟아졌었나 보다. 청년은 한참 독설을
쏟아냈다. 신사보다 20년 이상 어려 보였다. 아무리 세상이 막 돌아간다지만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그런 녀석과 맞섰다가는 도로 한복판에서 기막힌 이전투구가
벌어질 게 뻔했다.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중년 신사의 입에서는 뜻밖의 말이 나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차선을 좀 벗어났었나 보네요. 놀라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신사는 공손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욕설을 퍼붓던 청년은 흠칫 놀라는 기색이었다.
마치 뭔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말없이 자신의 차로 돌아갔다.
그 남학생도 다시 페달을 밟으면서 뿌듯한 꺠달음을 느꼈다.
"수업시간에 배운 상보성의 원리가 퍼뜩 떠올랐어요. 신사는 쳥년의 욕설이 바가지로
쏟아졌지만 그걸 그냥 흘려보낸 거였어요. 대신 '차선을 똑바로 지켜' 라는 말에서 진실을
본 거죠. 그 진실을 캐내 자신을 가다듬는 거울로 삼았던 겁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한쪽에서 "와!" 하는 소리가 들렸다. 상황을 꿰뚫어보는 그의 날카로움에
대한 경탄이었다.나도 그의 분석에 완전 동감이었다. 신사는 쏟아지는 독설은 모두 흘려버리고
오로지 그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의 알갱이를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저 젊은이가 내게 저토록 독설을 쏟아내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야. 내가 잘못한 게 뭐지?'
그는 자신을 완전히 비웠다. 그리고 자신이 차선을 똑바로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공손히
사과했다. 비굴하고 바보같은 짓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자신의 몸을 독으로 채우길 거부하는 현명한 길을 택했다.
대신 독설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캐내 자기 발전을 위한 긍정적 거울로 삼았다.
독설은 독이 된 게 아니라 오히려 득이 됐다.
모든 말싸움이 그렇다. 싸움이 끝나고 나면 화를 터뜨렸던 쪽이 되레 자괴감과 패배감을 갖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싸움이나 비난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비난은 아주 쉽게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말고,
나 자신이 아무 존재도 아닌 것처럼 행동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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